盧派八卦掌 簡介
노파팔괘장이란 명칭은 과거부터 인천팔괘장 또는 노수전 팔괘장 등으로 통칭되어 왔던 명칭을 하나의 문파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고,
산동에서한국 인천으로 팔괘장을 전해주신 노수전 조사의 업적을 기리며, 타 팔괘장류와의 차별성을 두고자 내가 2009년도에 세상에
공포한 나의 팔괘장 계통에 대한 문파명이다. 노수전조사의 팔괘장 계통은, 정정화 선생의 제자인 왕두 선생과 이경오 선생 두 분에게
수학하신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노수전 조사께서는 문맹인 이유로 발음으로만 선대 선생의 이름을 알려주신 것으로 이 두 분 중에
李敬五〔lijingwu〕가 누군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하던중.최근 馬貴派 八卦掌의 李保華 선생의 도움으로 인해 이경오란 인물이
재발견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윤복 선생의 초기 제자 중 山東 海陽人인 劉慶福 선생이 있다. 劉慶福〔liuqingfu〕 선생은 중국어로
리우칭푸”, 李敬五〔lijingwu〕는 “리칭우”가 되는데 발음 상 흡사하며 산동 억양이나 사투리를 감안할 때 상당히 유의미해진다.
李保華 선생은 유경복 선생의 제자이며, 마귀 선생의 제자인 劉萬川 선생(유경복 선생의 조카)의 계통으로 현재 마귀파 팔괘장의
전인으로 우리에겐 불확실 했던 이경오란 인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산동 연태와 해양을 방문해 탐방도 하였다고 하며, 그의 견해는
첫 번째 북경의 팔괘장이 산동으로 전해지는 계기는 尹福 선생계통의 劉慶福, 宮寶田, 田子乾 程庭華 선생계통은 王斗 이렇게 4인이
만년에 귀향하여 산동에 팔괘장을 전는데 산동에서는 이 네 분의 계통 외에는 팔괘장을 접할 수 없었으며, 두 번째 위의 내용처럼
발음상의 유사함에 있고, 세 번째 유경복 선생은 산동 해양인으로 만년에 귀향하여 1930년대에 연태에서 다년간 팔괘장을 지도하다
고향인 해양으로 돌아간 점, 네 번째 이보화 선생이 사진을 보내면서 유경복 선생이 제자들과 같이 찍은 단체사진에 젊을 때의
노수전조사로 추정되는 인물을 노수전 조사라고 콕 찍어 밝히는 점, 다섯 번째 李敬五라는 인물은 산동 뿐 아니라 팔괘장 계통 전체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오기로 인한 허구의 인물인 점.
여섯 번째 1923년 연태에는 국술관이 23개, 수련생이 529명, 애호가가 3413명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李敬五는
결국 발음만 듣고 유사하게 오기한 劉慶福 선생이란 것에 확신을 갖게 된다.이렇게 되어 노파팔괘장은 동해천 선생 이 후 두 개의
큰 문파인 정정화, 윤복 두 선생 스타일의 팔괘장을 품은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역사를 지닌 문파이며, 이를 최근 재발견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고,소시적부터 의문이 우리의 스타일이 정파인 것은 의심이 없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윤파의 기질이 묻어나왔던
점도 비로소 이해가 되게 되었다. 금번에 많은 도움을 준 마귀파 팔괘장 이보화 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마귀파 팔괘장과 노파 팔괘장은 사촌간 정도가 되는데, 계통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승계보도(師承系譜圖)
계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