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부이신 八卦門 5代傳人 永麗 김상호 사부께서는 1967년도 야간 중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화교촌의 부두노동조합에 사환으로 취업하게 되어 매일 출 퇴근 길에 자주 마주친 노인에게 안부인사 드리며 지낸 것이 인연의 시작이 되었고, 그 노인이 팔괘장이라는 중국무술의 고수임을 알게 되어 귀한 인연에 이끌린 어린 학생은 한국인 제자로는 최초로 팔괘장의 노수전 할아버지 문하에 들어 부두노동조합 3층 옥상에서 타인의 눈을 피해 3년간을 수련하시었다.
그 후에는 노수전 할아버지의 딸, 사위, 아들인 노수덕 선생에게 그 동안의 지도와 수련과정을 밝히고 사위가 운영하던 중국음식점 대려춘 옥상에서 노수전 팔괘장을 사사하였으며, 방학 때는 대려춘 옥탑방에서 기거하시던 노할아버지와 살다시피 하며 수련하셨다.
당시 팔괘장을 배우길 원했던 한국인들은 나의 사부이신 김상호 선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예외 없이 1967년도에 신포동에서 도장을 운영하던 노수덕 선생에게 입문했었고 후일에 노수전할아버지에게 직접 배우길 원했다.
그 들 중에는 노할아버지의 중국인 제자인 강영재 선생에게 기마식부터 배운 사람도 있는데 이 것은 노수덕 선생이 일이 있어 도장을 비우게 되면 강영재 선생이 대신 지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실은 강영재 선생의 육성 증언도 가지고 있다.
나는 노수전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진 김상호 팔괘장을 지키고 보존하는 사람이며, 그 외 누가 노수전 할아버지의 제자이고 제자가 아니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또한 노수전 할아버지에게 배운 제자들이 다 수가 있으므로 노수전 팔괘장은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또한 역사 왜곡의 대상물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손자 뻘 되는 어린 제자의 무술적 자질을 흡족해 하시던 노할아버지는 며느리(노수덕 선생의 부인)에게 부탁하여 중국옷을 지어 입혀주셨으며, 중국신도 만들어 신겨주셨고 수련 중에는 항시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시고는 니가 1번이라 말씀해주셨다 한다.
40년도 훌쩍 넘은 기억이지만 나도 김상호 사부께 입문할 당시는 태권도 4단 이었으나 몸소 보여주셨던 비범한 무술적 경지에 감격해 태권도를 영원히 버려버리고 사부의 무술을 추종해 마지 않게 되는 인연이 되었다.
그 기억과 경험은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상승의 신법이었고 그 때 경험하고 목도한 무술적 경지가 바로 나의 무술 목표치로 설정되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하였고,
나의 문하생들에게도 중국무술을 바른 경지로 이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타가 되어 주었다.
그 후 사부께서는 공군에 입대하여 휴가 때마다 노할아버지를 찾아뵈면서 한편으로는 일등병 신분으로 부대 내에 막사를 개조해 중국무술 십팔기 수련관을 개관하여 장교, 하사관 및 장병들에게 무술을 지도하여 제10전투비행단 무술교관으로 복무하였으며, 이는 공군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 하여 1974년6월4일자 전우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하였다.
제대 후에는 스스로 터득된 바를 토대로 유권체조무술 원신도를 창안하셨으며 당시부터 현재까지 개인사업과 함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련을 놓지 않고 새벽운동을 지속하고 계시다.
2021.1.27. 八卦門 6代傳人 强老 張貞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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